[네힐→하이하모 도탈] 0820

동맹/하이하모 도탈 2023. 8. 1.

"갖고 싶은 거, 있어?"


팔을 감아 오며 하이하모가 말간 얼굴로 물었다. 글쎄, 소파에 몸을 묻은 채 네힐은 심드렁하게 웅얼댔다. 그의 아내는 평소에도 그가 원한다면 간이고 쓸개고 내어 줄 것처럼 굴었으므로 이 말은 새삼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보통 이럴 때엔 어떻게 대답해도 곤란해졌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다음 날에는 열 배쯤 되는 물량으로 돌아올 게 분명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속으로 날짜를 헤아리며 손가락을 꼽다 보니 무언가 걸리는 감촉이 있었다. 오래 착용하니 한몸처럼 여겨 잊고 있던 모양이었다. 결혼반지... 그래. 그럴 시기였지. 생각이 났다. 그들의 기념일.


원하는 것이라... 소파 등받이 너머로 목덜미를 젖히며 네힐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건 없는걸.
스스로 행동거지에 오해를 살 법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뭐,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쓰기 좋아하는 욕망의 항아리처럼 보이겠지. 정정할 마음도 들지 않는다. 고친다고 무엇이 바뀌겠는가?) 사실 그는 그렇게 물욕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삶이 너무 벅찼다. 그 감정은 물 먹이지 않은 솜 같아서 한 번 물이 들기 시작하면 무섭게 몸을 불려 덮쳐 왔다. 검고 작은 빵 덩어리 대신 고깃덩이를, 헤진 끈 신발 대신 보석으로 장식한 비단 신을 원하게 했다. 그리고 그건 어김없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살기 위해 먼저 내버린 것들이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뻗을 수 있는 몸뚱이였다. 그것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가 있었다. 비록 발이 불 속을 디딘다고 할지라도 기꺼이 웃을 수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슬며시 입꼬리를 내리며 그는 늘어뜨린 팔에 달라붙은 서늘한 온기를 즐겼다. 어느새 몸을 숙인 하이하모가 팔에 뺨을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너는 알 필요가 없지만 나 또한 어느 부분이 비어버린 채 살았어.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았던 건 정말로 내일이 없어도 괜찮으니까. 흘러가듯 많은 사람이 앉았다가 지나가도 내버려 두었던 건 진정으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가족 같은 건. 그런 끈끈한 유대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 같은 건... 뿌리 없이 흔들리는 사람에게는 다루기 힘든 것들. 그런 주제에 어떻게 당당하게 가르쳐주겠노라 말할 수 있었는지.


그러나 당시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삶을 포기하는 얼굴에 그럼 죽어버리라고 침을 뱉는 행위 따위 그는 할 줄 모른다. 상처 입고 입히고 할퀴고 물어뜯을지언정 그것이 삶이라면. 감내라는 표현보다도, 그에 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녀의 영혼에 패배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방향 잃은 아이 같은 모습에 여기에 매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지독하게 운이 나쁜 일이었고, 동시에 가장 운이 좋은 일이었다.


그는 이제 내일을 생각해야 하고, 가족이 있으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 모두가 통째로 뒤집힌 것은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그를 바꾸는 것도, 욕망하게 만드는 것도 모두. 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너만 있으면 돼."


팔 안으로 하이하모를 끌어 당기며 그는 느긋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이것만으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