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아브락사스/해당화→코레 A. 아마란테] 20200718
그는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이후로 아팠던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지냈다. 나쁜 컨디션으로 프로젝트에 돌입해서 동료들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 걱정은 있었지만, 스스로 그 일에 대해 이랬다, 혹은 저랬다 평가하려고 하지 않았다. 천재지변이니까. 망망대해에서 만난 폭풍우 같은 거니까.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비바람과 파도가 왜 하필 자신에게 닥쳐오는지 이해하려 드는 게 아니라,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거나 혹은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는 것뿐이니까. 중요한 것은 그가 전자에 속했다는 사실뿐이었다. 동료들의 걱정에 그는 진심으로 고마워했지만 동시에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걱정했다고, 나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숙고하고 싶지 않았다. 원인도 과정도 결과도 두루뭉술해서 형편없는 삼류 연극 같았던 두어 달 사이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하루라도 빨리 예전의 몸상태로 돌아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왔다.
그럼에도 진심으로 속상해하는 당신의 표정에 그는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어요?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당신의 말은 이 축하연의 명랑한 분위기와는 간극이 컸다. 순간 그는 억지로 누르고 밀어가며 정리해 둔 머릿속이 다시 중구난방이 되는 것을 느꼈다. 꼭 오랫동안 장농 위에 올려 둔 이불을 끌어내릴 때 먼지더미가 온 방으로 쏟아져내리는 그런 이미지였다. 너무 많은 상념이 흩날려서 그는 잠시 숨을 멈추고 말을 잃어야 했다. 천재지변에는 고통이 따른다. 휘말린 사람이 아니라 휘말린 사람을 아끼는 사람들의 고통이 따른다. 그가 그동안 마주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당신이 지금 눈을 뗄 수 없게 보여주고 있었다.
에이, 너무 그런 표정 하지 말아요, 어찌되었던 저는 여전히 여기에 있잖아요. 조금 낡은 것뿐이고요. 누구나 조금씩 그렇게 낡아가는 거잖아요? 되는 데까진 열심히 회복할 테니까요.
그는 일부러 밝은 투로 말하고 보란 듯이 접시에 담겨 있는 음식을 먹었다. 그러지 말아달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나는 진짜로 괜찮으니까 그럴 필요 없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속상해하지 말아달라는 뜻이었다. 음식을 씹는 게 아니라 꼭 고무를 씹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음이 바늘로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당신의 웃는 얼굴을 좋아하는 만큼, 당신이 그런 표정을 짓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할 수도 없는 일이었건만 그런 일에 휘말려선 안 되었다는 의미없는 후회를 했다. 한없는 죄책감이 들어 그는 당신이 이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까지 약하지만은 않으니까. 지금 이 아픔의 크기에 비해 답은 간단하기 그지없단 걸 모를 리 없다. 조금 후에는 하루라도 빨리 더 건강해져서 당신이 다시는 속상해하고 걱정하지 않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결론을 낼 것이다.
천재지변은 후회해도 소용없고, 그저 다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뿐임을 당화는 안다. 잠시, 아주 잠시 잊어버렸을 뿐이다.
...하나 더, 그는 정리되어가는 마음 어디선가 슬그머니 들고일어난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어떻게 사람이 이래.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정말이지 세상에 둘도 없는 무뢰한이라고 느꼈다. 파렴치하게도, 그는 지금 그렇게 자신의 일을 제 일처럼 생각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주는 사람이 세상 다른 누구도 아닌 코레 아마란테 당신이라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상냥한 당신이니까, 누구에게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떠오르지 않았다.